투자의 세계에는 이름만으로도 무게감이 느껴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워렌 버핏, 레이 달리오와 함께 '월가의 살아있는 전설', '투자의 현인'으로 불리는 하워드 막스(Howard Marks) 역시 그러한 인물 중 한 명입니다. 최근 그와의 심도 깊은 인터뷰가 공개되어 많은 투자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하워드 막스는 과연 어떤 인물이기에 이토록 주목받는 것일까요?
그는 세계적인 투자 회사 오크트리 캐피탈 매니지먼트(Oaktree Capital Management)의 공동 창립자이자 공동 회장입니다. 1995년 설립된 오크트리는 부실채권(Distressed Debt) 투자를 중심으로 성장하여, 약 1,920억 달러(2024년 말 기준, 한화 약 260조 원 이상) 라는 천문학적인 규모의 자산을 운용하는 거대 투자 그룹으로 발돋움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운이 좋아 얻어진 성과가 아닙니다. 하워드 막스는 남들이 위기라고 인식할 때 기회를 포착하는 날카로운 통찰력과 엄격한 리스크 관리 원칙을 바탕으로 꾸준히 높은 성과를 기록하며 지금의 명성을 쌓아 올렸습니다.
특히 그가 투자자들에게 보내는 '메모(Memo)'는 투자 철학과 시장 분석의 정수로 평가받습니다. 워렌 버핏조차 그의 메모를 "내 메일함에 하워드 막스의 메모가 도착하면 가장 먼저 열어보는 것"이라고 극찬했을 정도입니다. 이는 하워드 막스가 단순한 펀드 매니저를 넘어, 시장의 흐름을 읽고 투자자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는 사상가로서 얼마나 큰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하워드 막스 인터뷰 핵심 정리: 격변의 시대, 투자의 길을 묻다
하워드 막스는 현재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시장 환경 변화가 자신의 투자 경력 전체를 통틀어 가장 큰 변화일 수 있다고 진단하며 인터뷰를 시작합니다. 그가 지목한 가장 큰 변화는 바로 '탈세계화(Deglobalization)' 흐름입니다.
1. 탈세계화: 끝나지 않은 변화의 시작
지난 수십 년간 이어져 온 자유무역과 세계화의 시대가 저물고, 이제는 무역 규제 강화와 미국의 고립주의 경향이 뚜렷해지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것입니다. 막스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약 80년간 세계 경제가 유례없는 번영을 누린 주요 원동력 중 하나가 바로 '무역의 성장'이었다고 강조합니다.
- 세계화의 혜택 축소: 각국이 가장 잘하는 분야에 집중해 생산하고 교역함으로써 얻었던 효율성과 '모든 배를 들어 올리는 밀물'과 같았던 경제 성장 효과가 약해질 것을 우려합니다. 그는 "이탈리아는 파스타를 만들고 스위스는 시계를 만드는 것이 최선인데, 무역이 중단되어 스위스가 파스타를, 이탈리아가 시계를 직접 만들어야 한다면 모두가 조금씩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비유를 통해 이를 설명합니다.
- 인플레이션 압력 증가: 과거에는 값싼 수입품 덕분에 물가 상승이 억제되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실제로 특정 25년간 미국 내구재 가격이 인플레이션 조정 후 40% 하락). 하지만 이제 관세 부과 등으로 상품 가격이 상승하고 인플레이션이 더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지적합니다. 관세는 결국 비용 증가이며, 많은 경우 소비자가 부담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입니다.
2. 시장 반응과 자산별 전망: 주식 vs. 채권
이러한 거대한 환경 변화 속에서 시장은 이미 반응하고 있습니다.
- 주식 시장: 주가는 이미 상당 폭 하락했습니다. 막스는 S&P 500 지수의 주가수익비율(PER)이 약 19배 수준으로 역사적 평균(약 16배)보다 높다는 점을 지적하며, 과거와 같은 연평균 10%의 수익률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말합니다. 역사적으로 PER 19배 수준에서 주식을 매수했을 경우, 기대 수익률은 연 1~7% 범위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합니다. 즉, 현재 주식 가격 수준에서는 과거 평균보다 낮은 수익률을 예상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 채권(Credit) 시장: 반면, 금리 상승으로 하이일드 채권 등 신용 자산의 기대 수익률은 높아졌습니다(인터뷰 시점 기준 약 8% 근접). 막스는 채권 투자를 "보는 것이 곧 얻는 것(what you see is what you get)"이라고 표현하며, 약속된 이자와 원금 상환이 명확하고 발행 기업의 부도 위험만 잘 관리한다면 상대적으로 예측 가능한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실제로 오크트리 캐피탈의 경험상, 비투자등급 채권 발행자의 약 99%가 약속대로 상환했다고 덧붙입니다.
3. 극심한 불확실성 속 투자 전략
막스는 현재 상황을 "눈 내리는 스노우볼처럼 마구 흔들린 상태(shook up like a snow globe)"에 비유하며, 미래 예측이 극도로 어렵다고 강조합니다.
- 예측의 무의미함: 관세 부과와 같은 패러다임 변화의 영향을 정량적으로 '측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과거 데이터를 기반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전통적인 방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거시 경제 전망에 대한 신뢰도 역시 그 어느 때보다 낮다고 진단합니다.
- '할인'에 주목하되 섣부른 판단은 금물: 그는 자산 가격 하락을 "백화점 세일"에 비유하며, 가격이 내려갔다는 이유만으로 시장에서 도망치는 것은 비합리적이라고 말합니다. 오히려 가격 하락을 '할인' 기회로 보고 냉정하게 분석하고 가치를 평가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다만, 현재의 할인 폭이 충분한지, 아니면 더 하락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으므로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즉, 공포에 휩쓸리지 말고, 탐욕에 앞서지 않는 이성적인 접근이 중요합니다.
4. 미국 투자 환경: 여전히 최고지만, 위험 요인 부상
미국이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좋은 투자처일 가능성이 높지만, 과거에 비해 그 매력도는 다소 떨어졌다고 평가합니다. 법치주의나 결과 예측 가능성 등이 약화되었을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 가장 큰 우려, 미국의 재정 상태: 막스는 미국의 막대한 국가 부채와 재정 적자를 가장 큰 위험 요인으로 꼽습니다. 미국이 마치 "한도 없고 청구서도 오지 않는 황금 신용카드"를 가진 것처럼 재정을 운영해 왔다고 비판하며, 최근의 지정학적 긴장 고조 등이 이러한 상황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만약 외국인 투자자들이 미국의 신용도에 의문을 품고 미 국채 보유를 꺼리게 된다면, 이는 미국 경제와 금융 시장에 큰 위험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하워드 막스의 인터뷰는 현재 우리가 직면한 복잡하고 불확실한 투자 환경을 깊이 있게 분석하며, 투자자들이 어떤 관점에서 시장을 바라보고 전략을 세워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그의 조언처럼, 섣부른 예측보다는 변화하는 환경에 대한 깊은 이해와 냉철한 분석, 그리고 위험 관리에 집중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 보입니다.